5월 광주와 나 … 내 청춘이자 삶의 이정표 광주여!

백왕순(통일의병) 대표

김생수 기자 | 기사입력 2020/05/17 [08:15]

5월 광주와 나 … 내 청춘이자 삶의 이정표 광주여!

백왕순(통일의병) 대표

김생수 기자 | 입력 : 2020/05/17 [08:15]

- 통일의병 전국운영위 광주에서 1박2일… ‘님을 위한 행진곡’과 ‘오월의 노래’ 부르고

 

▲ 통일의병 전국운영위가 광주에서 열렸다.  

 

[분당신문] 1979년 10월26일. 교실 스피커로 ‘박정희 대통령 서거’ 소식이 알려지고 순간 고요해졌다. 선생님의 확인으로 죽음이 확실시 되면서 교실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남자들만 있는 부산 삼성중학교 2학년 교실이었다. 나는 속으로 ‘독재자가 드디어 죽었구나’하며 환호했다. 그러나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서울로 전학을 하고 고등학교 2학년때, 광주학살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광주항쟁이 2년이 지난 후였다. 어린 나의 가슴은 전두환 살인마, 독재자에 대한 분노로 가득찼다.

 

▲ 통일의병 광주전라본부가 전국운영위 방문을 환영하고 있다.    

 

재수를 하고 대학에 들어갔다. 내가 대학을 간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전두환을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자연스럽게 시위에 참여하고, 소위 운동권이 되었다. 대학선배가 건네준 ‘카세트 테이프’ 한개가 나의 삶의 방향을 확실히 잡아주었다. 광주항쟁 마지막 가두방송으로 시작한 테잎은 광주의 노래와 기록이었다. 이불속에서 웅크린 나는 전율과 분노로 밤을 지새웠다.

 

“시민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도청으로 나오셔서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는 우리 형제 자매들을 살려주십시오. 우리는 도청을 끝까지 사수할 것입니다. 우리 형재자매를 잊지말아 주십시오. 광주시민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광주는 내 청춘이자 내 삶의 이정표였다. 정재헌, 심철호, 서효원, 용우승 선배님들과 동료들에게 지금도 감사한다.

 

▲ 일행은 광주 망월동 5.18 광주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지난 9일 광주에 다녀왔다. 통일의병 전국운영위를 광주에서 1박2일로 하기로 결정하고, 첫 일정을 참배로 잡았다. 광주에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신 광주전라본부장이 설명을 잘 해 주었다. 일행은 망월동 5.18광주 묘역 중 구 묘역과 신묘역을 둘러보고 앞서가신분들을 생각하며, ‘님을 위한 행진곡’과 ‘오월의 노래’를 부르고, ‘광주에서 통일로’라는 구호를 외쳤다.

 

40년이 지난 광주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헬기 등 발포명령자를 확인하고 책임을 물어야 하고, 아직도 수습하지 못한 행방불명자들은 찾아야 한다. 그리고 광주에 대한 왜곡과 폄훼가 사라지고 국민이 한 뜻으로 광주에 감사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후손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

 

▲ 통일의병 전국운영위가 광주 구 전남 도청앞을 방문했다.    

 

나는 광주에 가면 항상 우울하다. 이유는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 대한 죄스러움 때문이다. 특히 40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한 진상규명을 못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부끄럽고, 죄스럽다.

 

나의 바람은 ‘80년 광주에서 벗어나는 2020년 광주에서 희망찬 미래를 노래’하고 싶다. 하루 빨리 진상규명을 마무리 하고, 희생자들을 모두 가족품으로 돌려보내 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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