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라고 굳이 말해야 할까?…개찰구 앞에서 던지는 생각의 꼬리

최충일 사회복지전문위원 | 기사입력 2020/10/15 [08:33]

장애인이라고 굳이 말해야 할까?…개찰구 앞에서 던지는 생각의 꼬리

최충일 사회복지전문위원 | 입력 : 2020/10/15 [08:33]

▲ 저 개찰구 사이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장애인 뿐만 아니라 모두가 들어갈 수도 안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분당신문] 늦은 저녁. 지하철 역 개찰구를 지나며 '굳이 휠체어 마크를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러면서 연결된 생각의 꼬리.


난 여전히 직업 앞에 장애인을 붙이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하다. 소설가면 소설가지 장애인 소설가, 장애인 화가, 장애인 가수, 장애인 댄서, 장애인 아나운서 등 죄다 장애인이 앞에 붙는 것은 왜 그런 것인가.

 

이미 직업군과 사람의 속성이 합쳐 완성된 단어들 앞에 장애인을 붙인다는 것은 오류다. 장애인 소설가는 장애인들 세상에만 존재하는 소설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장애가 있는 소설가라는 의미라면 더더욱 쓰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설령 소설가 앞에 장애 정체성을 주고 싶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장점이나 작품명을 앞세운 단어여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라는 그들 조차 그렇게 말한다.(장애인 00단체(협회) 등은 그 단체의 성격을 나타낼 수 있으나 그것과 다르다.)

 

그럼 나는 장애인 사회복지사인가. 아무리 좋은 직업, 능력을 갖고 있을지라도 그 앞에 '장애인'을 붙이는 순간 바라보는 시선과 인식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언론과 방송에서 그것을 강조할지라도 장애인 스스로가 그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인식개선과 차별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저 개찰구 사이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장애인 뿐만 아니라 모두가 들어갈 수도 안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휠체어 마크의 필요성은 저 곳에 있지 않다. 물론 내가 말한 두 이야기는 개연성이 떨어질 수도 있으나 장애로 연결되는 개찰구던 직업이던 그것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공공의 질서와 통제를 위한 마크가 많아질 수록 생각의 틀이 작아지는 것 같다.

 

<분당신문>에서는 장애인식 개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최충일(38) 사회복지사의 칼럼을 게재하고 있다. 최충일 사회복지사는 인권강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사실을 랩퍼다. 지난 2009년 월 25일 방영된  SBS '스타킹'에 출연해 국내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한 랩을 구사하는 '아웃사이더'와 함께 프리스타일 랩 실력 발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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