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의 역사를 말할 때 '황무지를 보아라' … 뮤지컬 '황무지' 포에버

87년 첫 공연 이후 우여곡절을 겪으며 광주대단지사건 50주년 공연 선보여

김생수 기자 | 기사입력 2021/08/09 [10:09]

성남의 역사를 말할 때 '황무지를 보아라' … 뮤지컬 '황무지' 포에버

87년 첫 공연 이후 우여곡절을 겪으며 광주대단지사건 50주년 공연 선보여

김생수 기자 | 입력 : 2021/08/09 [10:09]

[분당신문] 50년 전 8월 10일, 그날 주민들이 나섰던 거리에는 비가 왔다고 한다. 굶주린 몸을 이끌고 눈만 빛나던 빗속의 군중들은 "배가 고파 못살겠다", "일자리를 달라"며 외쳤다. 그 외침은 80년 광주민주항쟁보다도 10년 앞서 무분별한 정부의 정책에 대해 항거한 최초의 도시빈민투쟁이었다.

 

세미 뮤지컬 황무지는 "집을 준다고 속이고 땅을 준다 속이고 직업을 준다 속이고 나중엔 준 것을 빼앗을 때 아이처럼 울 수 밖에 없는 우리는 작은 티끌 같은 하루살이. 하지만 알아야 해 우리의 절심함, 배고픔에 분노한 민중의 외침을"을 말하고 있다.

 

▲ 변변한 화장실조차 없어 똥지게를 이용했던 당시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배우들

 

서울 상계동 무허가 판잣집에서 살다 광주대단지로 이주하게 된 강씨, 그 곳에서 만났던 출판사 다니는 권씨, 사람좋은 최씨와 마을사람들. 그들은 집을 짓지 않으면 토지불하를 취소하다는 통보를 보내고, 집을 짓자 땅 값을 올려 일시불로 납부하라는 정부의 무책임한 행정에 분노해 광주대단지 항쟁에 동참한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극 속의 상황처럼 뮤지컬 '황무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 2017년 성남의 이야기를 꼭 성남에서 풀어내고 싶었지만, 공연할 무대를 찾지 못해 서울 대학로로 옮겨 첫 공연을 하던 때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성남문화재단이라는 굵직한 기구를 만들어 수많은 문화예술 분야의 선두주자 역할을 말했지만, 정작 성남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했던 탓이다.

 

이후 '극단 성남 93' 한경훈 대표를 만나 성남 공연을 요구하는 여론을 전달했고, 다행히 화려한 성남아트센터는 아니었지만, 소박한 분당소극장에서 '황무지'는 처음 성남 무대를 밟았다. 다음 해에도 어렵게 '황무지'는 공연을 이어갔지만, 이듬 해 2019년 7월에는 ‘성남시 광주대단지사건 기념사업 등 지원에 관한 조례’까지 제정했지만, '황무지'에게는 가장 참담한 해였다. 2017년과 2018년 2차례에 걸쳐 올렸던 '황무지' 공연을 위해 일찌감치 대관까지 해 놨으나 끝내 제작비가 확보되지 않아 8월 10일 대관을 스스로 취소했다. 

 

▲ 쥐약을 먹고 죽은 딸 혜자를 잃고 목놓아 울부짖는 정씨역의 정은란 배우.

 

2020년에는 성남시와 성남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코로나19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정식 공연무대는 아니지만 '황무지'는 성남시청 온누리홀에서 비대면 공연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광주대단지사건 50주년을 맞아 8월 7일과 8일 양일간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에서 1971년 8월 10일 광주대단지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상황과 민초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황무지'가 공연됐다.

 

이처럼 '황무지'는 그때 거리로 나섰던 5만여 명의 성남시민과 같은 존재였다. 무대조차 마련하지 못해 공연이 불투명했고, 견디지 못하던 단원들은 떠나거나 당장 먹고 살 것을 찾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비용을 마련 못해 대관을 취소해야 했을 때의 마음을 오죽했을리라.

 

그래도 '황무지'는 성남시민이 살아왔던 삶처럼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2017년 처음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오면서 계속 변화를 시도했다. 8월 10일 당시의 상황을 부각시키며 다소 과격(?)하다는 소리도 들었고, 먹을 것이 없어 쥐약을 주워 먹었던 '혜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도 했다. 그리고, 원주민과 이주민의 갈등의 소재로 '변소'라는 공간을 등장시켜 코믹 소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 8일 공연을 마치고 배우들이 마지막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무책임한 처사에 항거했던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사람들의 모습은 4년 전 첫 공연했을 때의 각오를 잊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제부터 성남의 역사를 말할 때 '황무지를 보아라'는 공식이 생겨날 정도로  '황무지' 공연은 매년 이어가야 한다는 공식을 만들고 싶다.

 

대학 소극장, 분당소극장, 시청 강당, 그리고 성낭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에서 내년에는 더욱 대작으로 거듭나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웅장한 모습으로 태어나길 기대한다. 이런 말들이 당시 정부가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광주대단지를 지상낙원으로 만들어주겠다는 빈 공약처럼 '희망고문'이 되지 않기 위해서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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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정훈 2021/08/09 [16:54] 수정 | 삭제
  • 성남 역사의 시작이 광주대단지라는 사실을 이번 연극을 통해서 처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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