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바위와 붉은 숲에서 노닐다”

대둔산 새천년 바윗길에서 만난 가을 이야기

분당신문 인터넷팀 | 기사입력 2010/12/16 [11:17]

“하얀 바위와 붉은 숲에서 노닐다”

대둔산 새천년 바윗길에서 만난 가을 이야기

분당신문 인터넷팀 | 입력 : 2010/12/16 [11:17]

   
▲조심스럽게 5피치를 오르는 선·후등자
아침 햇살이 곱다. 하얗게 빛나는 우람한 바위. 손마디를 타고 스미는 까칠까칠한 촉감, 하지만 바위는 따스하다. 한 무리의 클라이머(climber)들이 바위에 개미처럼, 줄지어 달라붙는다. 대둔산의 아침이 깨어난다.

   
▲2피치 길을 열려고 리딩
“이 지점부터 시작하자” “바윗길은 몇 구간 안되니 등반 시간은 충분해” 한 시간 여, 땀을 적실 정도로 부지런히 올라온 어프로치(Approach·등반의 출발점)에서 숨을 고른다. 전북 완주군 대둔산 새천년 바윗길 들머리다. 작은 배낭에서 자일과 개인 장비를 꺼내는 8명의 대원. 대개 헬맷과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등반순서를 정하는 것으로 출발 준비 완료다.  

등반 리딩(leading· 선등자)은 김영호(50·한국산악연수원 등산학교 6기) 대장이다. 작은 키지만 다부진 체격을 지닌 김 대장은 노련한 클라이머. 후배 대원 나이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나이와 상관없이 등반 능력 순으로 자연스레 선두와 후미가 정해졌다. 안전한 등반과 신속한 진행을 위해, 앞뒤 차지는 늘 선배기수다. 말구, 즉 장비회수 담당은 김용각 대원(52·14기)이 맡기로 했다.

우뚝 선 바위도 오르면 ‘길’
한국 산악인들이 찾는 바윗길 중에서 대둔산 바윗길은 경치도 아름답고, 난이도도 중상급 (5. 10급 이상) 구간이어서, 단골이 많다. 바위 자체가 어는 십일월을 피하려는지, 시월의 마지막날 등반팀은 특히 많았다. 대둔산 여러 바윗길 가운데 새천년길도 만만치 않은 난이도를 자랑한다. 

“첫 피치(Pitch·구간)는 길이 밀리니까 우회하는 게 좋겠어” 등반이 시작된 2피치 바윗길은 5.10a 등급의 40여 미터. 김 대장은 허리춤에서 찰랑거리는 여러 장비를 매단 채 단숨에 바위에 길을 낸다.  자일 확보를 하는 후등자의 눈빛이 선등자를 놓치지 않는다. 역시나. 흔들림 없이 단숨에 확보 지점에 올라서는 김 대장. “등반 완료”를 외치면서 후등자를 부른다.

대원들은 연달아 등반 하며 2피치를 넘어섰다. 10여 미터를 슬랩(Slap· 미끄러지기 쉬운 바위) 구간으로 지나자, 3피치는 보기에도 날이 선 수직 크랙(Crack·손, 발, 팔을 넣을 수 있는 바위 틈새)이 다가선다. 선등자는 달라붙어 볼트(bolt· 바위에 박는 확보용 고리나사)에 장비를 걸며 가볍게 길을 연다.

3피치 등반을 끝내고 확보지점에서 주변 바윗길을 살피니 바로 옆은 ‘구조대길’이다. 족히 40여 미터가 넘는 구간에서, 5명의 대원이 확보와 등반을 반복하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솟은 바윗길마다 줄지어 오르는 한 점의 개미처럼 클라이머들이 오른다.
  
새천년길 4피치 지점은 난이도가 작은 5.9 수준의 슬랩. 대원들은 거침이 없다. 5피치 지점 앞에서 확보를 하고 잠시 쉰다. 아침 8시부터 시작한 등반이 이제 11시를 가리키고 있다. 시간상으로 봐도 등반 실력이 좋은 편이다.

눈앞에 버티고 선 5피치는 고도감이 느껴지는 크럭스(crux· 피치 중 어려운 부분). 선등자는 후등자의 등반을 손쉽게 하는 슬링(Sling·등반 시 사용되는 끈)을 걸며 대원들을 독려한다. 채수일(68·17기) 대원이 까치발을 해서 오른 손으로 홀드(hold· 암벽에서 손이나 발로 잡을 수 있는 곳)를 간신히 잡더니 “휘익”. 수직 벽을 날렵한 발 자세로 순식간에 돌파한다. 나이를 잊게 하는 유연함과 대단한 완력이다.

새천년길은 5피치로 끝이 났다. 정상 너럭바위에서 간단한 행동식 파티가 열렸다. 대원들을 위해 집에서 만들어 온 고구마 맛탕을 한보자기 꺼내놓는 정용호(48·7기) 대원. 등반 과정에서 위기감에 “줄 당겨”를 연발하던 막내 김현진 대원(26·20기)도 언제 그랬나는 듯 즐거운 표정이다. 

팀웤·기술·장비 삼박자로 오른 봉우리
   
▲정상 너럭바위에서 기념 촬영
정상에서 바라본 대둔산 풍경은, 채도 높은 파란 하늘과 붉고 노란 나무숲. 하얀 암봉 들과 어울려 그야말로 보기 좋은 가을이 지난다. 멀리 케이블카로 올라 온 등산객들도 보이지만, 그 풍경이 바윗길에서 보는 것만 하랴. 서 있는 자리도, 올라온 길도 다 다르다. 팀웤과 기술, 장비, 이 세 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올라올 수 있는 바위 봉우리 아니던가.   

가을 햇살이 직선으로 내려쬐는 오후 2시. 대원들은 늦가을 풍광을 뒤로하고 하강 채비를 서두른다. 자일을 타고 오버행(Overhang·90도 이상의 경사도를 가진 바위면)으로 20여 미터를 하강한다. 내려선 길은 그야말로 한갓지다. 각양각색의 나무와 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바위가 빼곡한 원시림. 대원들은 하산 길에서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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