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은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을 처벌하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안전한 관리’나 ‘화학물질 분별’이라는 틀에 머무르지 말아야 한다. 살균이나 살충을 위해 화학물질에 의존하다가, 깔끔함을 위해 자연물질을 인공물질로 대체다가, 외려 스스로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실정이다. 우리는 이 사회의 위생관념 그 자체를 성찰해 화학물질 의존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우리에게 또 누군가는 ‘전통적’, ‘비과학적’이라고 비아냥거릴지 모르겠지만, 한국사회가 더 현대적이라서 유독 가습기살균제가 그렇게 팔려나간 것인가. 한국 사회가 과학적이라서 화학물질 의존이 유럽이나 미국 같은 사회보다 훨씬 강하게 나타나는 것인가. 예컨대 인체에 유해한 데다가 살충효과도 떨어지는 연막소독을 아직도 버젓이 실시하는 지자체가 있는 것을 보면, 한국사회는 도리어 미신이 지배하는 곳처럼 보인다. 우리는 무수한 미생물과 동거해왔고 그러면서 면역력을 길러 세상을 살아왔다는 진실을 직시하고, 살균 또는 살충효과가 강력한 것은 살인효과를 내재하기 십상이라는 가설을 세워놓는 게 오히려 과학적인 태도일 것이다.
지난 5월 2일 순천시에서 ‘기적의 놀이터’ 1호가 개장했다. 여느 놀이터에 판박이처럼 설치된 놀이기구가 없는 것은 물론 바닥에 충격흡수재도 없다. 대신 언덕과 개울, 동굴과 같은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화학물질로 만든 놀이기구는 물론 바닥까지 폐타이어 매트로 덮어버린 놀이터가 여기저기 널려 있는 세상인지라 적잖은 사람들은 이 놀이터를 위험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기적의 놀이터’가 지향하는 철학과 모토를 곱씹어보기 바란다. ‘건강한 위험’, ‘스스로 몸을 돌보며 마음껏 뛰어놀자’, ‘안전하기만 하면 상황 대응력이 떨어진다’. 전문 지식이나 고도의 실험 없이도, 얼마간의 상식과 경험 그리고 직관을 통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멎어버린 공간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터졌다. 안전을 위한 고심이 질병과 죽음으로 되돌아왔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이 시대 가장 처절하게 배반당한 분들이다. 기업은 자신의 제품을 쓰라고 유혹했고 사회와 국가가 이를 뒷받침했다. ‘각자도생’이 심한 세상에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자주 그리고 분명하게 나타난다. 몇 가지 조사와 발표만으로 넘어설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숨통을 죄어오는 화학물질 의존을 타파하는 것은 결국 공동체를 재구성하고 이윤의 논리를 억제하는 정치다. 우리는 다시 녹색정치의 이유를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