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떠난 자유여행, 시코쿠를 걷다_2

오헨로 순례길 88개 사찰 중 85번째 '야쿠리지'를 향하여

정은영 | 기사입력 2019/03/10 [18:28]

친구들과 떠난 자유여행, 시코쿠를 걷다_2

오헨로 순례길 88개 사찰 중 85번째 '야쿠리지'를 향하여

정은영 | 입력 : 2019/03/10 [18:28]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고 살아 온 친구들과 돈을 모았다. 그리고 쓰기로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지만 어디에 있든 일생을 함께라는 것만으로도 우린 내내 기분이 좋다. 그리 만나고 또 할 말은 머 그리 많은지. 고향친구들과 함께라면 어느 길도 어색하지 않고 익숙하다. 자유롭다. 우린 시코쿠를 걷는다.

둘째 날 – 1. 건강을 걱정할 나이가 되었다.

   
▲ 현지인들의 풍경을 마주하며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니 어제의 피로는 자연스레 사라진다.

[분당신문] 전날 약속한 대로 6시 30분에 숙소 11층 꼭대기 위치한 온천탕에 모였다. 노천탕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다시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직 어둑한 시간이었고 날씨는 어제에 이어 푸근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늦을 것 같았던 친구 한 명이 나오지 않았다. 점심이 다 되어서야 알았지만 친구는 피똥을 쌌다.

계획한 대로라면 오늘이 여행 중 제일 분주하다. 전체 일정을 촘촘히 짜지 않은 터라 그리 서두를 것은 없었지만 두 곳의 다카마쓰를 둘러볼 날이다. 7시 45분. 간단한 차림으로 로비에 모여 걸어서 리츠린공원으로 향한다. 일본 3대 공원이라는 리츠린은 천천히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다. 출근길 현지인들의 풍경을 마주하며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니 어제의 피로는 자연스레 사라진다. 아직 겨울임에도 반바지를 입고 학교에 가는 남학생의 옷차림이 생경하다. 공원에 도착할 무렵 수로에 들어가 나뭇잎 하나까지 청소하는 관리인의 모습에서, 거리의 깨끗함에 새삼 감탄한다.

2월 22일 금요일 이른 아침의 너른 공원은 한가로웠다. 이른 꽃들이 무리를 지어 멀리서 온 무리를 반겨주었다. “it's photo time~” 꽃에서. 잘 정리된 소나무에서. 조화로운 연못에서. 다리 위에서. 리츠린은 사진기 셔터를 아무렇게나 눌러도 아름답게 기억을 남기는 그런 정원이었다. 아침 허기를 메우려 공원 중간에서 먹는 팥 들어간 떡 하나도 맛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기분이었을 것이다.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시간, 공원 앞에 있는 사누키우동 우에하라(上原屋) 본점에 들었다. 우에하라는 그야말로 현지인들이 가벼운 가격에 즐겨 찾는 우동집이다. 특별히 전 과정이 셀프라서 좋았다. 시장기를 느끼던 우리는 입장과 동시에 쟁반을 들고 가케우동과 각종 튀김을 올리기 시작했다. 아니 각자 금빛 찬란한 튀김 탑을 하나씩 쌓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유부, 연근, 새우, 문어, 어묵, 가지, 우엉, 고구마, 야채 튀김. 면은 어쩜 그리 탱글 쫄깃 미끈한지. 집 앞에 이런 우동집이 있었다면 정말이지 매일 갔을 것이다. 다카마쓰에 다시 간다면 그 이유 중 상당 부분은 아마도 우에하라의 우동을 다시 먹기 위해서 아닐까.

   
▲ 덜컹대는 전철에 몸을 맡기고 바쁠 것 없이 나아가는 여행길은 한가로웠다.

욕심의 끝은 바로 후회로 나타났다. 일행 중 몇몇 포식자들조차 더는 못 먹겠다고 손을 들었다. 그제야 옆 테이블을 둘러보니 우동 하나에 튀김 하나 정도를 세팅하여 여유롭게 먹는 현지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할 수 없이 백팩에서 비닐주머니를 꺼내 남은 음식을 차곡차곡 담았다. 일행은 다음 점심 메뉴가 다시 우동임을 이때는 몰랐다.

자. 이제 아침도 든든히 먹었겠다, 야쿠리지로 가자. 라츠린코엔역에서 고토덴 전철을 타고 가와라마치역에서 환승하기 앞서 우린 1층에 위치한 스타벅스에 들렀다. 자유여행의 묘미는 일행 중 한 명이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우르르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것에 있다. 커피숍에 앉아 서넛은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한 친구의 이탈리아 여행 중 경험한 에스프레소 마시는 방법을 따라 하니 그럴싸하게 맛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나는 그 방법을 택했다.

우린 다시 출발했다. 시코쿠 여행의 계기가 된 오헨로 순례길 88개의 사찰 중 85번째 사찰 야쿠리지를 향하여. 야쿠리지에 가기 위해서는 환승역 가와라마치역에서 여덟 정거장을 가야 한다. 야쿠리역에서 전철이 출발하기 전 대기시간에 전철역 대테러훈련을 하는 모습을 잠시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훈련을 실전처럼 실감 나게 하는 모습은 예기치 않은 볼거리였다. 다음날 무심코 켠 TV에서 훈련뉴스를 다시 볼 수 있었다.

덜컹대는 전철에 몸을 맡기고 바쁠 것 없이 나아가는 여행길의 한가로움은 야쿠리지 역에서 내려 30여 분 주택가를 걸어가는 시간에도 이어졌다. 주변을 기웃거리며 웃음 띤 대화로 간혹 노를 저으며 천천히 맑은 물에 부유하듯 흐르는 시간이었다. 야마다야(うどん本陣山田家 本店)  우동집 간판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배가 아직 꺼졌을 리 만무한 일행들에게 야마다야 우동집의 우동 맛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또 얼마나 유명한 우동집인지 침을 튀기며 설명했다. 그러나 우에하라의 튀김폭탄을 아직 뱃속에 고이 간직한 일행들은 난색을 했다. 작전을 바꿔 우동집 정원이 아름다우니 둘러만 보자고 설득했다. 겨우 일행들을 우동집 마당까지 유인했다. 정원이 아름다우면 실내가 보고 싶은 법, 우린 자연스레 2시간여 만에 다시 우동집에 자리했다.

야마다야 우동의 붓카케우동과 자루우동의 맛은 가히 탁월했다. 배가 불러도 맛있으면 들어간다. 우동집의 역사와 맛과 알려진 이름을 곱씹을 맛이었다. 이런 시골 마을 길가 오래된 우동집에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우동을 먹는 풍경이, 조화로움이 여행을 한층 풍요롭게 해 주었다. 그러나, But. 일행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마치 우동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표정이다. 그 후로 여행 중 우동은 모두의 입에 회자 되었으나 메뉴에서 외면받았으며 공식적으로 우동을 다시 먹진 못했다. 신변의 위험을 느꼈다랄까.

   
▲ 다카마쓰에 다시 간다면 그 이유 중 상당 부분은 아마도 우에하라의 우동을 다시 먹기 위해서 아닐까.

고켄산에 위치한 야쿠리지는 입구에서 레일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일부러 편도행만 표를 끊었다. 케이블카를 기다리는 중에 이십여 명의 순례자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그들은 모두 오헨로의 의상을 갖추고 있었으나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와 빠르게 사찰을 둘러보고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갔다. 고마운 것은 썰렁했을 사찰 경내를 다니며 간혹 우리가 찍는 사진의 배경이 되어 주었다. 야쿠리지는 ‘장사의 신’을 모신 절이라 한다. 몇몇은 경건히 합장했다.

뒤로 변강쇠 거시기처럼 솟은 바위산은 4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원래 고켄산의 뜻은 다섯 개의 검이란 뜻이었으나 오래전 우측의 한 봉우리가 지진으로 무너져 내렸다 한다. 그럼 시켄산이되나. 전망대에서 좁고 가파른 산길로 일행을 이끌었다. 잠시라도 오헨로가 되어 보고자 하는 심산이었다. 이 또한 자유로운 여행자만이 느낄 수 있는 일종의 모험이다. 그 때는 서로가 핀잔을 주기도 했으나 여행이 끝나 갈 때 한 친구는 그 길을 걸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 하였다.

이 길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간혹 튀어나왔으나 그 또한 재잘거리는 이야기 소리, 웃음소리에 금 새 묻혔다. 그렇게 산을 다 내려올 즈음 허름한 떡집에 나이든 할머니 한 분이 보인다. 일행에게 이 집이 아주 유명한 떡집이라 즉석에서 둘러대며 떡 여섯 개를 샀다. 일행들은 다음에 먹겠다 했다. 나는 얼른 하나를 맛보았다. 평범한 팥떡이었다. 결과적으로 잠시 쉬는 자리에 떡 보따리를 놓고 오는 바람에 혼자만이 아는 전설의 떡이 되었다.

우린 말차를 마시며 잠시 숨을 돌렸다. 그때, 아침에 피똥을 싼 친구가 걱정되어 상태를 물으니 친구의 과민성대장염 증세의 원인이 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군 생활을 오래 한 친구의 지휘관으로서 애환이 묻어나는 생생한 이야기에 우리는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 덕에 떡 주머니를 까마득히 잊었지만, 역으로 걸어오는 내내 친구의 스펙타클한 이야기는 내내 솔직한 마음이 읽혀 한층 우리의 관계를 친숙하게 해 주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우린 모두 친구들의 건강이 걱정된다. 우리가 건강만 하다면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우린 지금까지 가족과 사회를 위해 건강한 삶을 살고자 했다. 이제 자신의 건강을 세심히 걱정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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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강초롱 2019/03/31 [13:52] 수정 | 삭제
  • 마침 담주 초에 다카마쓰로 3박4일 혼자 자유여행으로 벚꽃구경을 가는데..같은 분당에서 올린 좋은 여행기,,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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