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현장보존도 제대로 안 했다

윤기원 사망사건 16…사건의 열쇠를 쥔 증거와 단서 무시

유일환 기자 | 기사입력 2015/12/02 [16:46]

경찰, 현장보존도 제대로 안 했다

윤기원 사망사건 16…사건의 열쇠를 쥔 증거와 단서 무시

유일환 기자 | 입력 : 2015/12/02 [16:46]

[분당신문] 범죄 현장을 일명 ‘증거의 보고’라고 표현한다. 현장에는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지문, 혈흔, 체모, 체액, 사체 등이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실마리는 현장에 있고, 해답도 현장에 있다”, “사건이 안 풀릴 때는 현장을 다시 가라”, “현장을 보지 않은 자는 사건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등의 말은 그만큼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들이다. 

   
▲ 서울 만남의광장에서 윤기원 선수의 시신이 발견됐지만, 경찰은 현장보존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것은 경찰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사건 현장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기자들도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필자도 기자생활 하면서 숱하게 사건 현장을 다녀봤다. 그리고 현장에 가면 반드시 새로운 단서를 찾아서 기사로 썼다.

그런데 윤기원 선수 사건에서 경찰은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사건현장을 보존하기는 커녕 오히려 현장을 훼손했다. 사건현장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하지도 않았고,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변사체가 발견된 승용차를 임의로 옮겼다. 수사의 기본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2011년 5월 6일 오전 윤기원 선수의 시신이 서울 만남의광장 주차장에서 발견됐다. 아들의 갑작스런 사망소식을 접한 윤 선수 부모는 이날 세상에서 가장 긴 하루를 보냈다. 

윤 선수 어머니는 아직도 남편에게서 들은 “정신 바짝 차리고 들어. 기원이가 세상을 놔 버렸다”는 말이 귀에 생생하다. 윤 선수 가족들은 부랴부랴 김해공항에서 김포공항 행 비행기를 타고 서초경찰서까지 왔다.

그런데 이런 경황이 없는 중에도 경찰의 태도가 이상하게 보였다. 사망원인에 대한 조사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자살로 단정했고, 그렇게 처리하려고 했던 것이다.

당시 담당 경찰은 윤 선수 부모에게 “자, 자 이리 와 보세요. 윤기원 선수는 자살입니다. 일단 유서도 없고요. 개인적인 이성 문제와 주전 경쟁에 따른 스트레스로 인한 중압감에 의하여 일산화탄소를 마신 확실한 자살입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 곧 현장에 다녀와서 사건 종결에 사인을 하시고, 시신을 수습하여 사건 처리를 빨리 진행합시다”고 말했다. 

이런 정황으로 보면 경찰은 이미 윤 선수 사망을 자살로 결론짓고 처리 수순을 밟고 있었던 것이다. 유서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적인 이성 문제’와 ‘주전 경쟁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꼽았다. 이미 여러 차례 이전의 연재에서 밝힌 것처럼 윤 선수는 ‘이성문제’도 ‘주전경쟁 스트레스’도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윤 선수 가족과 경찰은 서울 만남의광장으로 갔다. 가족들은 사건 현장으로 가서 또 한 번 놀랐다. 사건 현장에는 윤 선수 사체가 발견됐다는 아무 표식도 없었던 것이다. 

   
▲ 경찰은 사건현장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하지도 않았고,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변사체가 발견된 승용차를 임의로 옮겼다.
폴리스라인도 설치하지 않았고, 윤 선수 차가 있던 곳을 스프레이로 표시하지도 않았다. 유족이 오기 전에 사건 현장을 말끔히 치워버린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때문에 유족들은 사건 현장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사건 장소에 가서 윤 선수의 승용차가 있던 자리까지 헷갈리는 등 허둥댔다. 윤 선수의 시신이 발견된 승용차는 만남의광장 인근에 있던 내곡파출소로 옮겨놓은 상태였다. 

변사 사건의 경우 자살 정황이 짙다 해도 사건이 종결되기 전까지 현장을 보존하는 것이 기본인데 경찰은 그것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윤 선수의 사건 자료를 보면서 또 한 번 놀랐다. 어디에도 차량 내부에 대해 지문 감식이나 DNA를 채취했다는 기록이 없다. 

경찰은 사건 초기 윤 선수의 부모에게 “차량 내부를 조사했지만 어디에서도 윤기원의 지문은 발견할 수 없었다. 라이터에도 지문이 없었다”고 말했지만, 이것을 뒷받침할 내용은 없었던 것이다. 

경찰은 여기서 또 한 번 수사의 기본을 어겼다. 윤 선수가 시신으로 발견당시 승용차 안에는 캔맥주와 과자류 등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사건의 열쇠를 쥔 증거와 단서들이 가득했는데도, 이것을 무시했다.

이쯤 되면 ‘실수’가 아니라 ‘의도성’까지 엿보인다. 핵심증거물이라고 밝힌 이마트 연수점 CCTV와 만남의광장 CCTV를 끝내 공개하지 않고 나중에 폐기한 것도 석연치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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