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 가는 길

비운의 천재 ‘춘원’을 기리는 봉선사 기념비

김금호(내셔널트러스트 사무국장) | 기사입력 2019/11/10 [12:31]

광릉 가는 길

비운의 천재 ‘춘원’을 기리는 봉선사 기념비

김금호(내셔널트러스트 사무국장) | 입력 : 2019/11/10 [12:31]
   
▲ 살아서 다정하게 광릉 길을 걷는 가족들보다 죽은 이들의 사이는 삭막하기만 하다.

[분당신문] “죽은 정승보다 산 정승집 개가 낫다” 했지. 숲 초입 마을버스 정류장에 내려, 죽은 임금의 비교 대상은 살아있는 무엇일까 생각한다.

봉선사 운허스님(속명, 이학수/춘원의 8촌 동생)이 쓰신 ‘큰 법당’ 한글현판은 여전히 친근하다. 1950년대  대웅전에 걸렸으니 70년 가까이 되었다. 머지않아 국내 최초의 유일한 한글 사찰현판으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

   
▲ 최근에 세워진 듯한 길상사의 마리아보살상을 이미테이션한 조각상.

봉선사 운허스님은 춘원 이광수의 8촌 동생으로 나이는 동갑인데, 생일이 빨라 운허스님이 동생이다. 운허스님은 일제강점기 교사를 하던 중 독립운동과 관련해 일경을 피해 강원도 유점사인가 숨어 있을 때 스님이 되었다.

   
▲ 광릉 세조와 정희왕후의 제실은 입지로서 풍경이 아름답고 빼어나다.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봉선사에 심었다는 500년 묵은 느티나무는 언제부터 저런 기품을 갖게 된 것일까? 70년 가까이 된  한글 현판과 500년 느티나무 그리고 최근에 세워진 듯한 길상사의 마리아보살상을 이미테이션한 조각상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역사로 남을까?

일주문 안에 세워진 동경유학 조선 삼대천재(벽초 홍명희,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 이광수 선생의 기념비 앞에서 묻는다. 안창호 선생과 상해 임시정부에서 일했고,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까지 당했으면서도, 친일과 한국전쟁기 납북(or월북)으로 종적을 알 수 없는 비운의 천재가 뭐라 답할 수 있을까?

   
▲ 왕과 왕후의 능은 남향이긴 하지만, 의도적으로 거리를 둔 것처럼 멀다.

광릉 세조와 정희왕후의 제실은 입지로서 풍경이 아름답고 빼어나다. 왕과 왕후의 능은 남향이긴 하지만, 의도적으로 거리를 둔 것처럼 멀다. 능 사이에 강이 흐르는 것처럼 절개지에 바위까지 돌출해 있다. 풍수 전문가들은 ‘유두혈’이라한다. 살아서 다정하게 광릉 길을 걷는 가족들보다 죽은 이들의 사이는 삭막하기만 하다.

   
▲ 여행의 끝은 시가지에 나와 ‘방일 해장국’으로. 부글부글 국물이 끓어 넘치는 해장국을 보며, 몸이 필요를 느끼는 대로 내버려두자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 광릉 차도는 꽉 막혔다. 차라리 걷자. 갈 때와 올 때까지 걸어 피곤하고 시장하다. 오후  여행의 끝은 시가지에 나와 ‘방일 해장국’으로. 부글부글 국물이 끓어 넘치는 해장국을 보며, 몸이 필요를 느끼는 대로 내버려두자 생각했다.

뜻이 높고 재능이 출중한들 죽고 없는 사람보다 살아서 내 손을 잡고 있는 이가 소중하다. 지는 계절이 아쉽고 까칠한 기분에 지독히 외로워지면, 겨울 코트라도 한 벌 장만해 소소한 기대를 걸어 보는 거다. 그렇게 한 발만 이겨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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