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의 북쪽이라는 '홍북면'의 홍북 칼국수

제철에 살이 올라 도톰한 굴과 잘 익어 발랑까진 바지락살 그리고 그걸 애써 감추려는 칼칼한 고춧가루

김금호(내셔널트러스트 사무국장) | 기사입력 2019/12/03 [20:51]

홍성의 북쪽이라는 '홍북면'의 홍북 칼국수

제철에 살이 올라 도톰한 굴과 잘 익어 발랑까진 바지락살 그리고 그걸 애써 감추려는 칼칼한 고춧가루

김금호(내셔널트러스트 사무국장) | 입력 : 2019/12/03 [20:51]
   
▲ 제철에 살이 올라 도톰한 굴과 잘 익어 발랑까진 바지락살 그리고 그걸 애써 감추려는 칼칼한 고춧가루가 특징인.홍북칼국수.

[분당신문] 가끔 소개하는 음식은 저렴한 가격에 그 지역 사람들이 자주 찾는 식당이다. 그럼에도 고향 내포의 음식을 소개할 때마다 망설여진다. 가격의 저렴함은 부끄럽지 않으나 비쥬얼이 드러내는 적나라함은, 살아온 과거 일부를 고백하는 것처럼 부끄럽기까지 하다. 값싼 음식일지라도 '입맛'은 처음부터 보편적일 수 없는, 살아왔던 지역의 '정서'를 간직하기에 사랑받는다. 

내포 신도시가 세워진 후, 서울에서 NGO활동을 하다 어찌어찌 이곳에 둥지를 튼 친구와 오랜만에 찾은 '홍북칼국수'.

 "빨강거유, 하양거유?"

길게 줄을 늘어 선 손님들에게 주문받는 방식은 다름없지만 올 12월을 기해 예산 소재의 덕산으로 이전한다는 현수막이 가게 앞에 펄럭인다.

 '아, 결국 이 집도 떠나고 마는구나.'

40여 년 홍북 면소재지에서 장사하면서 홍성에서 열리는 군민 체육대회 날이면, 면에 소속된 부락단위 주민들은 신너냄새 안 가신 타올 한 장과 식권을 받아 운동장에 차려진 이 집 천막식당에서 칼국수 한 그릇으로 배를 채웠다.

이름조차 촌스러웠던 홍성의 북쪽이라는 '홍북면'. 88올림픽을 흉내낸 면대표 선수들의 입장식 선두에, 전국 최대 사육수를 자랑하는 돼지가 그려진 피켓을 들고 등장하기도 했다.

면사무소가 제공한 멀끔한 유니폼도 입지 않고 작업복에 장화를 신은 채 돼지 피켓을 위 아래로 흔들던 아저씨. 운동장에 모여 있던 군민들이 '돼지동네를 누가 모르냐'는 투로 껄껄 웃어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두에 섰던 그 아저씨는 '우리가 누군지' 합법적인 시위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 분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할까?

추억에서 돌아와 각별한 친구와 마주한 벌겋게 달아오른 칼국수를 대하니 들이키기도 전에 속이 쓰려온다. '이 집도 떠나는 구나…' 그 시절 사람들이 냄새나는 돼지우리에서 일하다 칼칼한 국물에 소주 한잔으로 비위를 쓸어내렸을 이 집마저도.

10만 명을 목표로 이름조차 생소한 '내포 신도시'가 조성된 이곳. 목표일 뿐, 채 2만5천 명에 불과해 불꺼진 아파트와 상가가 즐비한 부동산 거품도시이다. 목표미달에도 입주한 주민들이 돼지 사육시설인 홍북에서 유입되는 악취로 인해 제기한 민원이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한다.

그 불명예가 싫어서 인지, 수익 창출에 따른 확장개업인지 칼국수 잘하던 그 식당이 이전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무분별한 신도시 개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인구감소 시대에 유입될 가능성없는 신도시 육성이 지방분권과 자급자족 달성을 확신해서 인가. 서울 집값 잡겠다 수도권에 공표하는 신도시는 주택공급 부족에 기인하는 것인가.

투기를 위한 돈조차 오가지 않으며 유령도 머물길 꺼릴 것 같은 지방 신도시의 현실. 그 현실이, 제철에 살이 올라 도톰한 굴과 잘 익어 발랑까진 바지락살 그리고 그걸 애써 감추려는 칼칼한 고춧가루보다 더 적나라하지 않을까.

이제 남남이 될 타향 칼국수에게 일방적인 절교를 선언하며 답할 일없는 이유를 캐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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