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을 내면서

지은이 토론·편집 : 이일영 · 이인미 · 이재경 · 도이 · 황인혁

이미옥 기자 | 기사입력 2020/08/13 [12:24]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을 내면서

지은이 토론·편집 : 이일영 · 이인미 · 이재경 · 도이 · 황인혁

이미옥 기자 | 입력 : 2020/08/13 [12:24]

 

▲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    

[분당신문] 우리는 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사실을 아직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이 사태가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아직 사태의 진실을 확인할 권능은 없다. 그러나 이야기 할 자유가 있고 책임이 있고 지식이 있다.

 

지금 우리 앞에는 두 개의 사태가 있다. 박원순의 죽음, 그리고 우리 마음속의 격동. 우리는 우리 마음속의 격동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알고 책임질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아직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잊지 않고 기다릴 것이다. 하여 아직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고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모두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고 기다려야 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가를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

 

지금 우리 마음속의 분노는 심각하다. 그 심각성이 개인과 공동체의 자성능력에 의해 조절되지 못하고 표현과 평등의 방법을 찾지 못할 때 분노는 공격의 상대를 찾는다. 지금 민주주의 사회 대한민국은 기억이 기만이 되고 사실이 마술이 되고 생각이 불길이 되고 말이 칼이 되지 않았는가? 모두가 적이고 세상엔 나밖에 보이지 않는 황무지, 유황 불길이 타오르는 만인의 싸움터가 되었다. 외롭고 쓸쓸하다.

 

비를 기다린다. 분노의 불길을 잠재울 이성과 이해, 비판과 공감을 기다린다. 겸손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때까지.

 

사즉생…
책 한 권 내면서 정말 별 각오를 다해본다.

 

이 책을 내려고 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잘못 건드리면 죽는다”였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본전도 못 건질 일에 왜 개입하려고 하냐는 충고들이었다. 그러나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돌을 맞고 죽더라도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구도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다. 원고 청탁을 많은 유명인사들이 거부하였고 여성학자들조차 결국엔 사양했다. 가까스로 마련한 토론회조차 마지막에 불참을 통보하는 인사도 있었다. 박 시장 죽음에 대한 충격이 아직 진정되지 않아 힘들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괜히 민감한 이슈에 휘말려 난도질당할 필요 없다는 것이 본심이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우리는 양식 있는 사람들조차 박 시장 사건에 대해 공개적인 입장을 밝히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보면서 왜 사회적 논제에 대해 자기의 견해를 밝히지 못하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양이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모두가 쥐가 된 기이한 현상에 대해 토론회에서 중점적으로 이야기했고, 알 것 같았다. 박 시장의 죽음에 대해 여전히 다수가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회복적 대화가 필요한 시간이다. 조금 서툴고 힘들더라도 비판적 거리 두기를 통해 객관화시켜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2부에는 ‘우리가 기억하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예시돼 있다. 나는 서지현 검사로부터 시작된 지난 2년 6개월 동안의 미투 사건을 정리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안희정, 이윤택의 재판기록을 살피면서 ‘위력’ 앞에서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 지켜질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그리고 그 적나라함에 대해서 분노했다.

 

미투 코리아가 확산되던 2018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한 이경자 소설가는 ‘미투 운동은 내면의 변혁’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의 인격은 몸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그 몸에 대한 추행 희롱 폭행은 전인격에 대한 전쟁행위와 같다.”

 

동감한다. 또한 미투 운동은 여성 스스로 주체적인 삶의 방식을 습득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박 시장 사건을 기존 미투와 똑같이 취급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미투 사건과는 분명한 차별성이 있다. 엄밀하게는 아직 진실조차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를 정쟁의 도구로 삼거나 가십으로 즐기려는 몰지각은 심각한 문제다. 시시비비를 먼저 가려야 한다. 그리고 대소경중도 따져야 한다.
 
여성은 이제 ‘약한 이름’이 아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런 변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많은 남자들이 아직도 이를 두려워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내 이름이 책 표지에 들어간 것이 낯설다. 뿌듯함보다는 솔직히 너무 불안하다. 그래서 충고보다는 위로의 말이 듣고 싶다.

 

발행일: 2020년 8월 18일
쪽수: 608쪽
가격: 종이책 1만7천500원/PDF 1만4천원/EPUB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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