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적응하는 아들…넘어져도 혼자 일어나야 하는 이유

최충일 사회복지전문위원 | 기사입력 2020/12/27 [16:32]

아빠를 적응하는 아들…넘어져도 혼자 일어나야 하는 이유

최충일 사회복지전문위원 | 입력 : 2020/12/27 [16:32]

▲ 모든 자녀들은 넘어져 아프면 위로받고 싶고 힘을 얻고 싶어 한다. 아들은 그 방법을 아빠에 맞춰 적응한 것이다.

[분당신문] 아들이 걸음마를 시작한 후부터였다. 나가서 함께 놀아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불안한 마음들이 커지기 시작했다. 아들은 뒤뚱뒤뚱해도 마냥 웃으며 걷고 뛰기를 반복했다. 

 

아들 뒤에서 전통휠체어 속도를 맞춰가며 따라가지만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내 앞에서 크게 넘어진 아들은 무릎이 까졌는데 우는 아들을 앞에서 안을 수가 없었다. 

 

휠체어에서 내린 나는 쭈그린 채 아들을 일으켜 달랬다. 한참을 바라보다 울음을 그친 눈가에는 꼬장물이 번져 시커매졌다. 무릎에 번지는 피를 닦아주며 속상한 마음에 "밖에서 걸으면 위험하잖아"라며 혼냈다.

 

내 반응이 잘못되었음을 알면서도 할 수 있는 말은 그것이었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아빠가 도와줄 수 없으니까 밖에 나가지마'였다. 나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한 셈이었다. 한창 뛰고 싶을 나이에 하지 말라는 말만 하는 아빠가 되고 싶지 않았지만 넘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아들은 넘어져도 울지 않고 혼자 일어나 내 앞까지 걸어온 후에 울었다. 마치 넘어져 울고 있으면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이해한 듯. 그랬던 아들이 이제 7살이 됐다.

 

아이는 컸지만 내 상황은 그때와 다르지 않다. 아빠가 등목을 태워주거나 업어줄 수 없으니 아들은 휠체어 뒤에 매달려 함께 달리거나 킥보드 속도를 아빠에 맞춰 드리프트를 즐긴다. 

 

아빠와 함께 놀 수 있는 방법, 아빠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는 아들을 보며 주변 사람들은 '아들이 속이 깊다' 혹은 '아빠가 장애가 있어서 일찍 철들었다'와 같은 말들을 한다. 

 

처음에는 동의했지만 다른 장애인 부모들을 만나며 생각이 바뀌었다. 아이들은 아빠의 '장애'가 아닌 아빠의 '행동'에 적응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싶다.

 

아빠가 여전히 함께 놀기를 주저하거나 불편한 반응을 보인다면 자녀 또한 그 반응에 적응해 아빠를 멀리하거나 불편해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모든 자녀들은 넘어져 아프면 위로받고 싶고 힘을 얻고 싶어 한다. 아들은 그 방법을 아빠에 맞춰 적응한 것이다. 아마 10년, 20년 후에도 아들은 아빠를 맞춰 행동할 것이고 나는 또 그것에 맞는 최선의 것을 보여줄 것이다. 그래야 아빠다.

 

<분당신문>에서는 장애인식 개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인권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최충일 사회복지사의 칼럼을 게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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