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의 인생_2

"저렇게 살아 뭐해. 저게 사는 거야?"

양성우 작가 | 기사입력 2019/03/25 [11:03]

술꾼의 인생_2

"저렇게 살아 뭐해. 저게 사는 거야?"

양성우 작가 | 입력 : 2019/03/25 [11:03]
   
▲ 분당제생병원 내과 전공의 양성우 작가

[분당신문] 어느 평범한 날, 그가 또 입원했다. 벌써 열 번 쯤은 되는 입원인 것 같았다.
45세 남자, 젊은 그는 이번에도 식사하기를 그만두고 몇 일 술만 마셨다 했다.

나는 보호자를 찾았다. 그러다 곧 홀아비임을 기억했다. 당연하게도 그의 아내는 계속되는 폭력에 지쳐 이혼을 선언했던 것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그래도 피붙이라고 챙기는 어미 뿐이다.

이번에도 끼고 온 그의 죄 없는 어머니는 몇 년 전만 해도 매사에 불만이 많고 의료진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성격 강한 할머니였다.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이 남자, 찬찬히 뜯어보면 상당한 미남이다. 알콜 중독자들은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인 경우가 적지 않다. 잘난 외모가 술과 쾌락을 부르는 것일까. 부리부리한 눈에 커다란 콧날, 작은 얼굴에 키도 크고 정말 탤런트 같은 외형이다. 준수했던 그는 젊은 시절 하루가 멀다하고 술을 마셨다고 했다. 하늘이 준 그의 보물은, 이제는 거대한 복수에 담겨 황달 냄새를 풍기며 썩어가고 있었다.

처음 그를 만났던 것은 레지던트 1년차때였다. 그 때도 이미 여러 차례 입퇴원을 반복하던 차였는데, 지금 상태와 비교해보면 병은 나름 초기였다. 복수가 약간 있기는 했지만 미소도 지을 수 있었고, 화도 낼 수 있었다. (적어도 지금같은 반 시체는 아니었다.) 나는 그가 퇴원할 때 그래도 남은 유일한 치료법을 제안했다. "술 끊으세요."
"줄이겠습니다." 그는 이미 여러 번 들어 안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그는 고통 때문인지 하루종일 신음했다. 진통제로도 잘 조절되지 않았다. 하늘 높이 둥그렇게 솟은 배를 스치기만 하면 아야아야 하며 소리 질렀다. 촛점은 없지만 크게 뜬 노란 눈은 파충류 같았다. 지난 번 입원때만 해도 '이제 그만 죽고 싶다'는 말을 하고는 했지만, 지금은 고통으로 괴성을 지르기만 할 뿐이었다.

급성악화의 원인은 일단 감염이었다. 전신을 커버하는 주사 항생제를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정맥혈의 염증지표는 정상으로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가장 큰 문제는 신장이었다. 간질환 환자의 무서운 합병증 중 하나인 간신증후군. 빠른 속도로 신장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45세라는 젊은 나이에 며칠간 소변이 안 나오는 괴이한 경험을 해 본적이 있을까? 보통의 사람이라면 당황해 응급실이라도 찾을 일이었겠지만, 그는 당황함같은 사소한 감정을 느낄 몸상태가 아니었다.

핍뇨는무뇨가 되어 수일 째 지속되었다. 간신증후군에 준해 주사제를 사용했지만 반응은 없었다. 이쯤 되자 그는 통증조차도 호소하지 않았다. 동물적인 반응은 사라지고, 정신을 완전히 잃은 채 얕게 숨 쉬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이구나•••••.’

결국 병원에서 끝을 맞이할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항상 드는 마음은 '이번 만큼은 아니길•••••.'이었다. 치료자로서 비겁할 수 있겠지만 때때로 약한 마음이 드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가장 힘든 일은 말할 것도 없이, 보호자를 준비시키는 일이었다.

나는 그의 어머니에게 앞으로 벌어질 일을 설명했다.지금 죽어가고 있으며, 곧 끝이 온다고.
하지만 그의 모친은 슬프거나 놀란 표정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충격을 받은 것은 그런 반응을 본 나였다.

"이그, 이 웬수 덩어리. 잘 됐어. 아프지나 않게 해 줘요."
"네, 어머니. 당연하죠. 그런데 마지막이 언제쯤 올 지, 정확히 언제라고 말씀은 못 드리겠네요."
"저렇게 살아 뭐해. 저게 사는 거야?"

그녀는 화가 난 듯 소리치더니, 환자 병실 안으로 걸어 들어가 누운 아들 위로 거친 감정덩어리들을 서슴없이 툭툭 떨어뜨렸다. 그녀가 던지는 말들은 지나치게 날것이어서 진심인지 아닌지 구분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 이제 놓아. 놓고 가라. 다시 오지 마라. 거기는 술 없잖아. 너 괴롭히는 사람도 없어. 나도 없어. 오지 마라. 다 놓고 가. 여기가 뭐가 좋니. 가 버려. 그리고 오지 마라. 다시 오지 마라."

그녀는 앞뒤 별 다르지 않은 말을 도돌이처럼 반복했다. 같은 말, 그것도 미움의 언어를 중얼거리는 그 모습은, 진짜로 그런 생각을 하는 건지, 자식을 잃는 극심한 고통을 이겨내려 오히려 그러는지 알기 쉽지 않았다.

너 힘들었지. 나도 힘들었어.
엄마와 자식으로 만났지만, 우리는 참 힘든 인연이었지.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아들인 네가 나보다도 먼저, 이렇게 갈 때가 되었구나.
나는 너를 만나 좋았지만, 너무 힘들었단다. 매일이 고통이었단다.

술꾼 환자는 신음하다가도 누런 눈을 곧게 뜨고 제 어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둘은 마지막까지 서로의 얼굴을 담아두겠다는 눈을 하고 긴 시간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끝내 손은 잡지 않았다.천천히 사그라 드는 육친의 끈을 보고 있으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 끝 -

이 글을 쓴 분당제생병원 내과 전공의 양성우 작가는 2019년 1월 청년의사가 주최한 ‘한미수필문학상’ 장려상에 이어 “시사문단’ 3월호에 수필「술꾼의 인생」, 「러시아 미녀의 죽음」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양성우 작가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학과와 연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한 늦깎이 의사로써 문단에서도 뒤늦게 실력을 빛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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