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0주기 "세월호 교훈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끝까지 기억하겠습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분당신문 | 기사입력 2024/04/17 [07:15]

세월호 참사 10주기 "세월호 교훈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끝까지 기억하겠습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분당신문 | 입력 : 2024/04/17 [07:15]

▲ 김동연 경기도지사

 

[분당신문] 10년 전 오늘, 저는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 자리에 있었습니다. 참사 당일, 당시 국무총리는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중이었습니다.

 

‘세월호 승객 전원 구조’가 오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즉시 중간 경유지 방콕에 있는 총리에게 연락했습니다. 서울공항이 아니라 바로 무안공항으로 가시라고, 진도체육관으로 가서 세월호 탑승자 가족들과 만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음 날 새벽, ‘이번 참사는 총리 사표뿐만 아니라 내각 총사퇴를 준비해야 할 심각한 사안’이라고 총리에게 건의하고, 저는 별도로 계속해서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그리고 두 달 뒤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어른이라 미안했습니다. 공직자라서 더 죄스러웠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압니다. 그 사람 대신 나를 보내달라고 울부짖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압니다.

 

대부분의 아픔과 그리움은 세월 앞에서 희미해지기 마련이지만, 아주 드물게는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2학년 8반 준형이. 수학여행 날 아침, 곤히 잠든 동생들을 깨우지 않을 만큼 사려 깊었던 형. 용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까 하다, 아버지와 동생들에게 줄 초콜릿을 사기 위해 참았던 큰아들.

 

2학년 5반 건우. 엄마가 지어준 멋진 이름, 세울 ‘건’에 펼칠 ‘우’ 가장 가까웠던 단원고 5인방 준우, 성호, 재욱이, 제훈이를 먼저 걱정했던 속정 깊은 맏아들.

 

작년, 재작년 제가 기억교실에서 편지를 남겼던 아이들이 있습니다. 2학년 3반 도언이, 제주로 향하던 그 밤, 엄마에게 전화 걸어 “엄마 사랑해” 말하던 예쁜 딸. 2학년 6반 영인이. 축구를 정말 좋아했던 만능 스포츠맨, 딸 같았던 살가운 막내아들.

 

어디 이 네 학생뿐이겠습니까. 조금 전 이름이 불렸던 304명 한 사람 한 사람의 숨결과 얼굴이 남은 우리 모두에게 희미해지지 않고 또렷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웃으며 달려올 것 같은 그리운 이들을 가슴에 품고 유가족들은 열 번의 가슴 시린 봄을 버텨오셨습니다. 그저 따뜻하게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될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함께 수학여행을 떠났던 친구들보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생존자 여러분의 두 어깨도 가만히 감싸주고 싶습니다.

 

▲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식에 참석한 김동연 경기도지사.

 

열 번째 봄입니다. 아이들이 돌아오기로 했던 금요일은 어느덧 520번이나 지나갔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봅니다.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관해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권고한 12가지 주요 권고 중 중앙정부는 현재까지 단 1가지만 이행했습니다. 책임 인정, 공식 사과, 재발방지 약속, 모두 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추모사업, 의료비 지원 등의 정부 예산도 줄줄이 삭감됐습니다. 4.16 생명안전공원도 비용·편익 논리에 밀려 늦어지고 있습니다.

 

비극적인 참사는 다시 반복됐습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159명의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구명조끼도 입히지 않고 세찬 급류로 내몰린 해병대원이 희생됐습니다. 여전히 책임지는 사람은 하나 없고, 진실을 덮기에만 급급합니다. 우리 현실은 10년 전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경제는 여전히 개발연대 성공 경험에 갇혀 낡은 틀을 바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육 역시 극심한 경쟁과 학벌주의가 점점 공고해지고 있습니다.

 

정치는 어떻습니까. 더 강고해진 승자독식 구조, 극한 투쟁과 대립의 무한반복 속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급변하는 국제정치, 패러다임이 바뀌는 세계경제, 기술진보와 기후변화, 저출생까지. 우리에게 닥친 이 수많은 도전과제에 답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제 그만하자고, 이제 그만 잊자고 말합니다. 틀렸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충분히 회복될 때까지, 우리 사회에 ‘안전’과 ‘인권’의 가치가 제대로 지켜질 때까지, 우리는 언제까지나 기다리겠습니다.

 

이번 정부에서 하지 않는다면 다음 정부에서라도, 세월호의 교훈이 우리 사회에 온전히 뿌리내리도록  끝까지 기억하고, 함께하겠습니다.

 

경기도는 다르게 하겠습니다. 경기도에서만큼은 ‘안전’이 최우선이 될 것입니다. 재작년 이태원 참사 이후 경기도는 수원역에서 전국 최초, 최대 규모의 사회재난 대응 훈련을 했습니다. 6개월 뒤, 성남에서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때의 훈련 경험으로 다행히 더 큰 피해를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참사는 분명히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습니다.

 

안전뿐만이 아닙니다. 경기도는 사람 중심 경제,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 패러다임을 바꾸고, 대화와 타협으로 정치의 판 또한 바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달라질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경기도가 앞장서겠다는 다짐을 오늘 다시금 해봅니다.

 

유가족들이 중심이 되어 쓴 책 <책임을 묻다>를 읽습니다. 그날 아침으로 돌아가기 위해 선내 CCTV를 보고 또 보았답니다. 살아있는 아이의 모습을 다시 만났답니다. 세월호 선체에 들어가 아이가 걷던 복도와 계단을 걷고 또 걸었답니다. 출입구까지 몇 걸음이면 갈 수 있었을지 걸음 수를 세었답니다.

 

책의 프롤로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정부처럼 윤석열 정부는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최후가 윤석열 정부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진실을 감추는 자들이 침몰할 뿐,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우리는 책임을 물었고, 국가는 책임을 묻었다’입니다. 그렇습니다. 열 번째 봄이 왔지만, 우리는 잊지 않겠습니다. 304명, 한 사람 한 사람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기억의 끈을 이어 서로의 손을 맞잡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안전한 나라, 기회가 강물처럼 넘치는 나라, 사람 사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겠습니다. 그 길에 경기도가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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