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사 중이라고 해서 설치된 바리케이드 사이로 휠체어를 넣고 달렸다 멈췄다를 반복했다. |
[분당신문] 공사 중이라고 해서 설치된 바리케이드 사이로 휠체어를 넣고 달렸다 멈췄다를 반복했다.
분명 이 길은 공사 중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만든 길이라고 했는데, 나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아 속상했다.
중간에 너무 좁은 길을 마주했는데 휠체어 바퀴가 벽에 끼여 오도 가도 못한 처지가 되어 버렸다. 뒤 따르던 행인들이 기다리다 도와준다.
사실 내가 먼저 도와주길 기다렸다. 이렇게 계속 끼어 있다 보면 누군가 도와주겠지. '도와주세요'라는 말 안 해도 누군가 와서 도와주겠지 라는 마음으로…
사회복지사인데 '문제'에 직면했을 때 해결법을 찾지 못할 때 무기력함을 느낀다. 평소라면 당연히 다녔을 이 길이 공사 중이었을 때 나는 시민으로서 자격을 상실한 것처럼 느껴졌다.
뉴스에서 본 정자동 다리가 무너지고 난 후부터 이 주변 공사가 많아졌다.
'다리 공사해서 왜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라는 말로는 '안전불감증'이라는 대답에 할 말이 없듯이 나 또한 공사 중인 곳을 탓할 수 없었다. 직립보행 중인 사람들과 휠체어 탄 사람들은 여전히 다른 세상 속 사람들로 구분된다.
도와준 시민의 고마움과 공사 중인 걸 알면서도 다닌. '나 때문이야'라는 죄책감이 교차한다. 교차할 때가 많다. 지하철에서, 마트 계산대에서, 사람들의 발을 밟을 때도 그렇다.
'밟아서 죄송합니다.' 왜 내가 밟을 수밖에 없는 상황의 연속인가?
후자는 말이 길어진다. 구차한 변명처럼 느껴져 사람들 앞에서 설명하기 피곤하다. 좁은 길은 단순하면서 복잡한 감정을 갖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