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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마다 조금씩 섰다. 가끔 밖에 나가 바람을 쐬였다. |
기차가 시베리아를 향해 달리고, 블라디보스톡을 벗어나자 핸드폰이 불통되고, 기차안의 방은 시간을 초월하는 공간이 되었다. 특히 내일이라는 시간을 고민할 필요도 없다. 아침 식사를 하지 않고 계속 잘 수도 있고, 계획된 프로그램이 점심시간에 있지만 그 외에는 그냥 72시간을 달리면 된다. 72시간 동안 시간을 잊어버리는 공간의 아늑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같은 공간에 함께 하는 4명은 서로 초면이라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분은 대기업을 퇴사하고 서당을 열어 훈장을 하고 있었다. 인자해 보였다. 공무원인 두분은 고등학교 친구로 20년 특별휴가를 바이칼로 정했다고 한다. 대단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마음의 벽을 허무는 수단으로 술자리를 마련했다. 자리를 잡으면서 시작된 술자리는 계속 이어졌고, 나는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생각을 실행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것은 대륙의 일출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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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은 흐르고 차창 밖으로 여명이 비추기 시작했다. 지평선에서 오르는 일출의 광경은 감동이었다 |
아침 식사를 하자고 깨워서 비몽사몽 눈을 떳다. 새벽까지 마신 술이 깨지 않은 상태여서 망설였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아침 식사가 궁금해 따라 나섰다. 계란후라이와 빵, 그리고 커피. 간단해서 좋았다. 대신 1시간 이상을 기다려서야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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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아침 식사가 궁금해 따라 나섰다. 계란후라이와 빵, 그리고 커피. 간단해서 좋았다. 대신 1시간 이상을 기다려서야 먹을 수 있었다. |
다시 객실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한잠을 자고 점심식사와 미팅을 위해 식당칸으로 갔다. 나는 숄란카 스프 3그릇을 비웠다. 향채 때문에 먹지 않은 분이 있어 대신 맛있게 먹었다. 해장이 조금 되는 느낌이었다.
식사 후 소설 '세여자'의 작가인 조선희 선생의 특강을 들었다. 이동휘, 김일성, 이광수 인물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 역사를 손쉽게 이해되도록 설명해 주었다. 소설 '세여자'는 허정숙, 고명자, 주세죽 세 여성 혁명가의 삶을 통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공산당운동사를 정리하고 있다.
다시 객실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눈을 뜨니 비가오고 있었다. 화장실 세면대에 가서 세수와 이를 닦고, 식당칸으로 갔다. 몇 테이블에 러시아인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술을 먹고 있었다. 물을 한병 사서 테이블에 앉아 비 내리는 창밖을 보면서 멍 때리기를 했다. 핸드폰은 불통이다. 역을 지나가거나 정차할 때 터진다.
다시 객실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조금 지나 눈을 떳다. 이제 잠이 오지 않는다. 복도에 나와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초록의 향연이 지속된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어 일행은 식당으로 향했으나 우리 객실은 각자 집에서 가져온 것들을 먹는 것으로 해결했다. 초원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을 마시니 세상 부러울 것이 하나 없다. 지금도 차창밖으로는 광활한 대륙의 모습이 하염없이 펼쳐지고 있다.
한반도에 평화와 협력의 시대가 오면, 말을 타고 선조들이 달렸을 시베리아 벌판을 힘차게 달려보고 싶다. 아마도 환웅천왕은 이길을 따라 내려 왔을 것이고, 독립의병들도 이길을 달렸을 것이다.
오늘은 맥주 한 캔만하고, 책을 읽으면서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 이틀째 밤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