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 아빠는 아이와 놀아 줄 장소가 없어 비장애 아빠보다 부족합니다
- 높은 계단과 문턱, 엘리베이터가 없어 무기력한 장애인으로 만듭니다
[분당신문] 저는 현재 성남에 살고 있으며 토끼 같은 8살 아들과 마누라를 둔 평범한 아빠이자 한 가정의 남편으로 살고 있습니다. 전동휠체어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중증 장애인이기도 합니다.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있고 성남에 온 지 2년 정도 되었는데요. 아내도 장애가 있어 우리 가족은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는 지역사회에서는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살 때는 익숙했던 장애인 편의시설들이 경기도 성남시로 이사 오고 나니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높은 턱과 계단 몇 개에 발길을 돌리는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 주말 나들이 중 아들이 목이 말라 편의점에서 물을 사려고 할 때도 휠체어 경사로가 설치되어 않아 결제하고 나오는 손님들을 붙잡고 사장님을 불러 달라고 부탁하는 일들도 생기고 있습니다. 결혼 전에는 나 하나 불편하면 그만이었는데 결혼 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의 불편함이 곧 가족의 불편함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2018년 여름 태풍 쏠릭이 지나가던 어느 날. 평소처럼 탄천 길로 퇴근을 하면서 아이를 휠체어 앞에 태우고 집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탄천 길이 물에 잠겨 접근이 제한되었던 것입니다. 아이를 안고 돌아서 큰길로 나섰는데, 예기치 못한 보도 턱을 마주쳤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를 질주해야만 했습니다.
퇴근하면서 운전 중이던 복지관 동료 직원이 그런 나의 뒷모습을 걱정하며 찍은 사진을 보냈습니다. 순간, 아빠로서 책임과 함께 작은 턱을 두고 넘지 못하는 무기력한 나의 이동권에 분노가, 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뒤섞였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경험하고 싶지 않았기에 스마트폰 민원 앱을 설치해 ‘보도의 턱을 낮춰 달라는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산 등의 이유로 추경 후 올해 안으로 다닐 수 있도록 재정비 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답변과 달리 2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곳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장애로 인한 불편함은 ‘보통의 삶’을 존중받지 못하게 합니다. 높은 계단과 문턱,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들은 ‘보통의 삶’마저도 무의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자녀와 놀아 줄 장소와 활동들은 비장애 아빠보다 부족합니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 실내놀이터를 찾았지만, 현실은 휠체어 바퀴가 더럽다는 이유로, 출입문의 단차가 높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하기 일쑤이며,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하고 싶어도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지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지 사전에 확인하지 않으면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아빠로써의 책임감은 장애·비장애를 떠나 동등하지만, 내가 장애인이 아닌 휠체어를 이용하면서 발생하는 불평등 때문에 또 다른 사회적 장애가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의 생각이 아닌 장애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이제는 성숙해져야 할 시대이기에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변화의 힘, 그것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실천하고자 합니다.
많은 것을 요구하지도, 장애인을 위한 더 많은 혜택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비장애인이라면 일상으로 여겼던 것들을 장애인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으면 합니다. 5cm 남짓 작은 턱 때문에 가지 못했던 상점들, 아들 앞에서 생수 하나 쉽게 사지 못한 아빠 장애인들의 삶을 비장애인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서울거리 턱을 없애 달라”며 서울시장에게 투서를 쓰고 자살한 저와 같은 휠체어를 탄 아빠가 있었습니다. 30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것만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저는 신문 속 故 김순석 씨처럼 구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의 글이 동정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것이 더 슬프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일상이 현실이 될 수 있는 사회, 저의 바램이 소리 없는 메아리처럼, 30년 전 김순석 씨의 사건처럼 묻힐까, 아무도 알아주지 못해 힘들어 했던 그 분의 마음이 저의 마음처럼 되고 있는 현실이 슬퍼서 글을 씁니다. 저와 아내, 아들이 자유롭게 외식할 수 없고, 그 편한 실내놀이터조차 함께할 수 없는 현실. 아들의 운동회를 보기 위해 계단 앞에서 업혀 다닐 수밖에 없는 장애인들의 삶은 왜 바뀌지 않는 것인지 그것이 힘듭니다.
저는 장애인 아빠가 아닌 분당구 야탑동에 사는 평범한 성남 시민으로서의 아빠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