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쓰비의 추억 : 취향과 기호 발견하기

나한테 커피는 누군가 함께할 수 있는, 그러나 좋아해서 마시는 것이 아닌 검은 물이다.

최충일 사회복지전문위원 | 기사입력 2020/11/01 [19:20]

레쓰비의 추억 : 취향과 기호 발견하기

나한테 커피는 누군가 함께할 수 있는, 그러나 좋아해서 마시는 것이 아닌 검은 물이다.

최충일 사회복지전문위원 | 입력 : 2020/11/01 [19:20]

[분당신문] 중학교 1학년, 시험기간만 되면 선배들이 매점에서, 자판기에서 레쓰비만 한 움큼 사들고 기숙사를 향했다. 그 당시 집회실이라 불리는 큰 방에서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공부했는데 생활지도사(그 당시 사감이라고 불렀던) 방 불이 꺼지면 생활관 복도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 레쓰비를 마시지 않고 시험을 보면 망칠 것만 같은 불안감만 커졌다.

챙그랑 챙그랑 레쓰비 캔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궁금했다. 지금은 에너지음료와 같은 효과처럼 레쓰비도 그랬다. 레쓰비를 마시면 늦은 시간까지 공부할 수 있다고 했다. 선배들의 레쓰비 사랑과, 믿음에 나 또한 궁금했는데, 커피 한 모금 마셔본 적 없었기에 주저했다.

 

마치 알코올과 같은, 아직은 마시면 안 될 것처럼 느껴졌다. 나 또한 레쓰비를 마시지 않고 시험을 보면 망칠 것만 같은 불안감만 커졌다. 그래서 나도 자판기에서 2, 3개 정도 샀다가 밤 9시에 원샷을 하고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새벽 1시를 넘겨도 눈에 힘이 들어갔다. 커피에 들어간 성분 때문에 그렇겠지만, 플라시보 효과도 분명 컷을 것이다. 그 뒤로 커피는 내게 음료라는 인식보다 뭔가 피곤할 때 마시는 것으로 여겼다.

 

세월이 흘러 대학교 1학년.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이 어딘가 바쁘게 달려갔다. "레쓰비 마시러 가자"라는 말을 하며 달려갔지만 난 그저 멀찌감치 뒷모습만 바라보며 궁금해했다.

 

1학년 1학기 내내 수업이 끝나면 기숙사 또는 식당이 나의 주 코스였고, 그 경계를 이탈해 본 적 없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너도 레쓰비 마시러 갈래?"라고 했는데, 마치 "너도 우리랑 같이 놀래"처럼 들렸다. 어딘지 묻지 않았다. 물어보면 마치 내가 촌스러워 보였기 때문에 그냥 따라갔다.

 

그곳은 당구장이었다. 당구장에 돈을 내고 게임을 즐기면 사장님께서 자유롭게 마실 수 있는 음료들을 주셨는데 대부분 레쓰비를 즐겨마시는 것 같았다. 당구를 쳐본 적도 없었지만 전동휠체어를 움직이며 당구 친다는 것이 여간 번거롭고 폼나 보이지 않았다. 난 그저 그 친구들과 함께 레쓰비 마시러 함께한다는 것이 즐거웠다. 레쓰비는 그것을 상징하는 기호식품처럼 인식하게 되었다.

 

현재도 다르지 않다. 직장 동료들과 점심시간. "커피 마실래요? 제가 살게요"라고 한다. 나한테 커피는 누군가 함께할 수 있는, 그러나 좋아해서 마시는 것이 아닌 검은 물이다.

 

물론 마시다 보니 드립 커피,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등등 맛의 깊이와 취향이 다를 수 있다는 것쯤은 알게 됐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난 커피보다는 헤이즐넛이나 카라멜마끼아또를 더 좋아하게 됐다. 여전히 커피는 내 취향은 아니지만 그것이 주는 의미는 경험하지 않으면 취향도, 기호도 생길 수 없다는 것이다.

 

시도하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고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취향과 기호라는 개념인 것 같다. 여전히 난 누군가 문화여가, 여행  주제 대화들을 나눌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경험이 없기 때문에 취향과 기호를 물어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레쓰비를 마시면... 그땐 몰랐는데, 지금은 너무 달게 느껴진다. 아메리카노를 맛봤기 때문에 가끔은 텁텁한 커피가 더 생각나게 되는, 그래서 레쓰비를 마시면 내 취향과 기호가 무엇인지 연결된다.

 

<분당신문>에서는 장애인식 개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최충일 사회복지사의 칼럼을 게재하고 있다. 최충일 사회복지사는 인권강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사실을 랩퍼다. 지난 2009년 월 25일 방영된  SBS '스타킹'에 출연해 국내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한 랩을 구사하는 '아웃사이더'와 함께 프리스타일 랩 실력 발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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