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 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 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죽/ 남북 간에 오종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 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하고 목질기기가 동탁 배꼽 같은 천하 흉포 오적(五賊)의 소굴이렷다.” - 김지하의 오적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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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자치제하의 성남을 포함한 지역언론의 실상은 정치와 주민간의 소통의 매개체로써가 아니라 오히려 언로(言路)의 왜곡현상을 심화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 |
1970년 잡지 사상계에 정부를 통렬하게 비판한 풍자시 오적(五賊)을 발표했던 저항시인 김지하씨가 최근 열린 재심에서 법원의 ‘징역1월 선고유예’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는 소식이다. 유신시대의 대표적인 필화(筆禍)사건으로 기록된 김지하 시인의 오적시가 최근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듯하다. 40년만에 이루어진 재심에서 사실상 무죄나 다름없는 선고유예 판결에 불복했다는 점보다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척박한 언론현실이 오버랩(overlap)되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지방자치제하의 성남을 포함한 지역언론의 실상은 정치와 주민간의 소통의 매개체로써가 아니라 오히려 언로(言路)의 왜곡현상을 심화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만큼 심각한 상태에 빠져있는 곳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필화’의 사전적 의미는 ‘발표한 글이 법률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켜 제재를 받는 일’이라고 칭한다. 어찌보면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가 본질적으로 침해당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필화사건의 이면에는 정권의 속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기자를 포함한 글쓴이에게 제재를 가하는 주체가 대부분 정권 즉, 권력이기 때문이다. 정권에 비판성향을 보이거나, 밉보인 언론인과 작가의 입과 펜을 ‘막고 꺽기’ 위한 합법의 수단으로 실정법(實定法)을 동원하는 속성을 보인다.
정권을 잡은 권력자는 예산이라는 막강한 자금력과 조직을 장악하고 있어 실정법을 이용해 제재를 가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운만큼 언론통제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제재의 대상인 언론인이나 작가들은 권력을 대상으로 한 모든 대응을 본인들의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는 만큼 소위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대부분이다.
유신과 군부독재시절에는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등을 악용해 필화사건이 저질러졌지만 요즘 들어서는 대부분 언론피해 구제를 명분으로 한 언론중재법 등을 이용하는 치밀성으로 교활함을 포장하고 있다.
권력자는 필화사건을 정권 비판의 봉쇄 수단으로 악용
얼마 전 성남의 대표적 인터넷신문인 S일보를 대상으로 성남시가 정정보도를 요구하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S일보가 사실(fact)에 근거하지 않은 채 허위보도를 함으로써 명예훼손 등의 피해를 당했다면 언론중재법상 정해진 절차를 통해 피해구제를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행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S일보는 성남지역의 거의 모든 언론매체들이 시정 비판에 눈과 입을 닫은 지 오래되었다는 불명예스러운 지적을 받는 가운데 현정권의 시정 운영과 관련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몇안되는 언론사라는 것은 이미 성남사회에서 주지의 사실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이번 S일보를 대상으로 한 성남시의 언론중재위 제소건을 두고 지역사회 일각에서 언론의 비판 기능을 위축시키고 봉쇄하려는 포석이 깔린 조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언론자유를 둘러싼 시민들의 우려도 그만큼 커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성남과는 별개지만 역대 어느 정권이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수단으로 실정법을 악용한다면, 그것은 현대판 분서갱유(焚書坑儒)나 다름없다는 비판은 물론이고 국민적 저항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을 역사가 입증하고 있는 만큼 위정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언론에 재갈 물리려는 실정법 악용, 국민적 저항 면치 못해
김지하 시인의 오적에서는 죄 없는 민초 ‘꾀수’를 무고죄로 몰아 감옥에 집어넣고 자신은 도둑촌을 지키는 주구(走狗)로 살아가는 포도대장과 오적의 무리가 어느 날 아침 기지개를 켜다가 갑자기 벼락을 맞아 급살(急煞)한다는 내용으로 끝을 맺고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언로가 막힌 사회나 정권은 어떤 종말을 가져왔는지는 역사에 잘 나타나 있는 만큼 위정자들은 새겨듣고 과오(過誤)를 범하지 않기 위해 실천궁행(實踐躬行)해야 할 대목이다. 언론(言論) 또한 ‘언롱’(言弄)으로 전락되었다는 손가락질을 받지 않기 위한 대오각성(大悟覺醒)을 통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더욱이 오적이 발표되었을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그때의 오적은 아직도 그 속성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고, 오히려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지방권력이 새롭게 추가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지방분권이라는 미명 아래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르는 자치단체장과 거기에 빌붙은 지방의원 등을 포함해 기생충이나 다름없는 ‘신오적’(新五賊)들이 얼굴에 철판을 깔고 활개치는 구도로 재편된, 지방자치의 왜곡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을 한국사회에서 목격하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는 느낌이다.
신오적이 활개치는 현실, 언롱은 대오각성해 언론으로 거듭나야
“여섯째 놈이 나온다/ 한때 지난번 주인 무지하게 비판했던 놈이 아니더냐/ 손에 든 명함 보아하니 십이라는 수를 박았구나/ 어허 저놈 입을 보아라/술술 잘도 나오는 말은 예전과 똑같구나/ 똥간 갈 때하고 나올 때가 다르다만/세치 혀 계집한테 다르고 마누라에게 달랐구나/ 어허 저놈 손을 보아라/ 한손은 단상에 올려놓고 다른 손은 주판알 튕기는구나/ 일곱째 놈이 나온다/ 어깨에 앵무새 앉히고 나팔 부는 꼴이 약장수와 다를소냐/ 붓꺽기 솜씨 신출귀몰 홍길동이 놀라 피하도다/ 주둥아리 처박힌 은똥도 모자라서/ 금똥 찾아 헤매는 붓뚜껑들 가관일세/ 굽은 펜대 춤사위가 기똥차다 삐뚤빼뚤.”
결국 지방자치의 주체로서 유권자인 국민들이 오적(五賊)의 뒤를 잇는 ‘신칠적’(新七賊)이 가면을 뒤집어쓴 채 똬리를 틀고 활개치고 있지는 않은가, 두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살펴보아야 신칠적의 발호(跋扈)를 막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는 국민 내지는 시민들에게 전달되는 말과 글을 가로막고 가로채서 왜곡시키는 적(賊)들의 수(數)는 오히려 과거에 비해 훨씬 늘었고, 그 방법 또한 교활함과 지능화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닥공’은 ‘닥치고 공격’의 줄임말이다. 김지하 시인은 풍자시에서 ‘개견(犬)’자가 들어가는 한자(漢字) 신조어를 만들어 오적들을 표현했었다. 그렇다면 새해부터 준예산 사태라는 홍역을 치렀던 성남의 경우는 어떤 말이 신조어로 적당할까를 생각해 보았다. ‘택시’와 ‘닥시’로 정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 싶다. 그 의미의 해석은 독자 제위께 맡긴다.【객원논설위원】